[칼럼 67] 그 누구도 <훈민정음>을 반포하지 않았다(1)
관리자 | 조회 79
[칼럼 67]
그 누구도 <훈민정음>을 반포하지 않았다(1)
몇 해 전 C 도의 교육연수원에서 초등학교 수석교사 연수 때 특강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훈민정음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적이 있다.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백 명이 넘는 수석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했다.
첫째, ‘한글’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
둘째, ‘훈민정음’ 글자 수는 몇 자인가?
셋째, 한글날 제정의 기준은 ‘훈민정음’ 창제일 인가? 아니면 반포일 인가?
넷째, 자음의 이름 '기역, 니은, 디귿'은 누가 지었는가?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이 네 가지 문제를 모두 맞힌 교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국보 ‘훈민정음해례본’에서 ‘해례본’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정확하게 답을 말하는 교사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그러나 이들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아랫물이 흐린 것은 윗물 탓이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관련 자료(역사 기록 등)를 자세히 검토해 보지도 않고, 앞사람 따라 하기에 급급하거나 어설픈 내 주장 하기에 몰두하는 사이에, 사실은 왜곡되고 진실은 묻혔다.
‘세종실록’ 어느 곳에도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어떤 근거로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일을 기준으로 했다고 주장하는가? 그리고 같은 말, 같은 글자를 쓰는 남한과 북한의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 10월 9일과 1월 15일로 왜 달라야 하는가.
이건 모두 학자들의 문제다. 생각해 보자. 훈민정음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기록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인데, 무슨 생각으로 역사 기록을 무시한 ‘주장’을 하는가. 기록마다 차이가 있으면 교차 검증을 하고 보충 자료를 충실하게 검토하면 될 일을, 굳이 말단 가지와 잎에 매달리거나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을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해 오는 기록이 우리들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세종실록’과 ‘해례본’ 등의 기록이 명확하고 당사자들의 증언이 하나로 분명한데, 이 자료들을 살펴보지 않았거나 해석을 잘못하지 않고서는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렇게 잘못 알고 잘못 배워 왔다.
이런 것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자꾸 엉뚱한 쪽으로 이어지게 된다. 초등학생들에게 한글로 된 국어 과목 등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교육이 중요하지 굳이 한문으로 쓰인 ‘훈민정음해례본’에 대해서 알아야 하나라는 등의 이야기도 흔히 나온다. 일리 있는 푸념이다.
더욱이 대학 시절 국어를 전공하지 않았으니, ‘한글’이나 ‘훈민정음’이나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이고 24자로 아무런 불편 없이 쓰고 있으니, ‘훈민정음’을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관심 밖이라는 교사들의 말은 충격을 넘어 연민을 느끼게 했다. (다음 호에 계속)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교육학박사 박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