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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여민관

훈민정음 경산 칼럼

[칼럼3] 외국인이 본 훈민정음

관리자 | 조회 1307

[칼럼 03]

외국인이 본 훈민정음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따랐습니다. 이제 글을 같이 하고 법도를 같이 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제하신 것은 보고 듣는 이를 놀라게 하신 일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므로 새로 된 글자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글자의 형상이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이 글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도 전에 사대모화에 젖은 보수파 학사 일곱 명을 대표하여 최만리가 세종대왕에게 올린 장문의 상소문 중 일부분이다. 6백 년이 다 되어가는 2021년 다시 읽어봐도 너무나 굴욕적인 필치에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만약 이 상소문을 읽은 세종대왕의 성품이 연약하여 명나라의 비난이 두려운 나머지 훈민정음 반포를 포기하였더라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문자 생활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니올시다이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으로부터 440년이 지난 1886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 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와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 자문을 맡아 광무황제(고종)를 보좌하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알려진 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26 ~1949.8.5) 박사는 131년 전 미국 언론에 기고한 '조선어'(THE KOREAN LANGUAGE)라는 기고문에서 "알파벳과 비슷한 훈민정음은 완벽한 문자라며 조선어(훈민정음) 철자는 철저히 발음 중심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갈망하고,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표음문자 체계의 모든 장점이 여기 한글에 녹아 있다"라며 "영어는 모음 5개를 각각 여러 개의 다른 방법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러한 체계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하면서 "글자 구조상 한글에 필적할만한 단순성을 가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며 "모음은 하나만 빼고 모두 짧은 가로 선과 세로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19세기 서양인들은 한국에 도착하여 한국인에 대한 첫인상으로 대체로 가난에 찌들고, 무기력하고, 더럽고, 겁이 많고, 무절제한 사람들로 단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오래 머물러 본 그들은 호머 베절릴 헐버트처럼 한국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우리가 쓰는 문자 체계에 대해 참모습을 자각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선입관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간 것을 여러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몇 명의 서양인들이 훈민정음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살펴보자.

컬럼비아 대학 한국학 세종대왕 명예 교수인 게리 키스 레드야드(GariKeith Ledyar)훈민정음은 세계 문자 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이다. 한국 국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를 누리고 있는 민족이다.”라고 하였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는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인간이 쓰는 말의 반사경이다. 훈민정음이 간결하므로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시카고대 제임스 맥 콜리(J.D. McCawley) 교수는 훈민정음은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물이다. 한국인들이 1440년대에 이룬 업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언어학적 수준에서 보아도 그들이 창조한 문자 체계는 참으로 탁월한 것이다”, 하버드대학 교수, 동아시아 역사가이기도 한 에드윈 라이샤워(E.O. Reischauer) 교수는 훈민정음은 세계 어떤 나라의 일상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이다.”라고 칭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서양인들의 훈민정음에 대한 평가는 그치질 않는다. 대표적으로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장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영어,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훈민정음 읽기를 깨치는데 하루면 족하다. 훈민정음은 매우 과학적이고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 라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서양인들이 한국인의 문자인 훈민정음의 놀라운 특성을 발견하면서부터 그들이 가졌던 부정적인 한국인 관을 수정하고, 한국인은 문화민족이며, 머지않아 세계적인 지도자의 나라가 될 훌륭한 국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지 어언 한 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엄청난 문자의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되면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훈민정음의 위대함을 애써 외면한 채 억지로 비틀고 자학하고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동사무소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주민센터로 바뀌고, 전국의 아파트들은 영어인지 우리말인지 모를 정도로 국적 불명의 영어와 조합을 해야만 고급 아파트 양 생각하기 시작했고, 각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 진행자는 물론 출연자들도 앞다투어 외래어를 섞어 써야만 지식인처럼 보인다는 착각 속에 버젓이 우리말로 사용해도 무방한 용어들을 파괴해 가는 폐해는 우리가 자각하기도 전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호머 헐버트 박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방문해서 이곳저곳에 붙여진 간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